아수라(Asura: The City of Madness): 무법의 도가니 속 인간의 추악한 민낯을 그린 한국 느와르의 극점
아수라(Asura: The City of Madness): 무법의 도가니 속 인간의 추악한 민낯을 그린 한국 느와르의 극점
2016년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는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강렬한 범죄 느와르 영화입니다. '아수라'라는 제목처럼 힌두교에서 분노와 광기의 신을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극도의 폭력성과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타락한 세계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132분의 러닝타임 내내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력과 욕설, 배신과 음모가 가득한 지옥도는 관객을 압도하며, 한국 느와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 지옥도를 그리는 서사: 남성 권력의 해부
아수라는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부정부패와 범죄를 뒤처리하는 부하로 일합니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핑계로 시작된 그의 타락은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듭니다. 검찰 쪽에서는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박성배 시장의 비리를 캐내려 하고, 한도경은 두 세력 사이에서 이중첩자 신세가 됩니다. 자신을 형처럼 따르는 후배 문선모(주지훈)까지 시장의 부하로 보내는 한도경의 선택은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끕니다.
영화는 이러한 줄거리를 통해 권력과 돈, 그리고 생존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박성배 시장의 "법이 뭔가? 내가 법이다"라는 대사는 권력의 오만함을, 한도경의 "그놈의 돈"으로 시작되는 독백은 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를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2. 시청각적 충격: 극단으로 치닫는 폭력의 미학
아수라의 가장 큰 특징은 거침없이 표현되는 잔혹한 폭력성입니다. 차량 추격신, 고문 장면, 장례식장에서의 대치, 복도에서의 격투 등 여러 액션 시퀀스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강도 높은 폭력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차량 추격신은 리얼리티와 속도감을 모두 갖춘 명장면으로, 한국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액션 시퀀스로 평가받습니다.
영화의 시각적 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누런 색조로 처리되어 부패한 도시의 느낌을 강조합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 칙칙한 실내 조명, 피와 흙이 뒤섞인 얼굴들은 지옥과 같은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에 날카로운 효과음과 둔탁한 타격음은 폭력의 생생함을 극대화하며, 관객이 그 폭력성에서 도망칠 수 없게 만듭니다.
3. 배우들의 전투: 광기와 절망의 연기 앙상블
아수라의 또 다른 강점은 배우들의 열연입니다. 황정민은 권력에 미친 시장 박성배 역을 맡아 무자비한 폭력성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검사 김차인과의 대치 장면에서 보여주는 눈빛과 말투는 마치 '신세계'의 정청을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곽도원은 냉철하고 독종인 검사 김차인 역할로 황정민과 대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입니다. 주지훈은 순수했던 신참 경찰에서 악의 세계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우성의 경우, 한도경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의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와 거칠고 타락한 형사 캐릭터 사이의 불일치가 일부 관객들에게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절망적 상황에 내몰린 인물의 고뇌는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4. 주제 분석: 악의 순환과 구원의 부재
아수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합니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타락했거나 타락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특히 한도경의 여정은 처음에는 아내의 병원비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자신의 생존을 위해 더 큰 악을 선택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권력의 부패, 제도의 실패,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그리면서 어떠한 구원의 가능성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악인들의 전쟁만이 남고, 이는 현대 사회에 대한 암울한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특히 권력이 법과 정의를 대체하는 세계, 그리고 그 권력이 개인의 탐욕에 의해 움직이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개처럼 이용당하고 버려질 무렵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그저 더 큰 탐욕을 위해 쓰여진 소모품이었다는 진실과 마주한다"는 비평가의 분석처럼, 영화는 권력 구조 속 인간의 소외와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5. 개인적 감상: 불편함 속의 카타르시스
아수라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묘한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두 시간 넘게 휘몰아치는 폭력과 배신, 절망의 연속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느낌이었지요. 영화 속 환경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둡고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동시에 이상하게도 매우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한도경이 경찰과 시장, 검찰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결국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오직 생존만이 남았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 답으로 '더 큰 악'을 제시하며, 이는 불편하지만 어딘가 수긍이 가는 현실성이 있었습니다.
또한 황정민과 곽도원의 연기 대결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폭발 직전의 긴장감을 뿜어내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정우성의 캐릭터는 다소 어색했다는 평이 많지만, 저는 그의 깔끔한 외모와 타락한 내면의 괴리감이 캐릭터의 분열된 정신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수라는 분명 불편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분명합니다. 현실의 부조리함과 권력의 추악함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6. 문화적 맥락: 한국 느와르의 극단적 진화
아수라는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등 한국 느와르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폭력성과 암울함을 보여줍니다. 김성수 감독은 전작 '비트', '태양은 없다', '감기' 등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며, 타협 없는 연출로 장르의 한계를 시험했습니다.
제작자 한재덕은 '사나이 픽처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등 남성적 액션 영화를 주로 제작해왔으며, 아수라는 그 정점에 선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성수 감독과 한재덕 대표는 인터뷰에서 "기존 질서를 깨고 싶었다"고 밝히며, 영화의 극단적 성격에 대한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영화는 개봉 당시 극단적인 폭력성과 어두운 세계관으로 인해 관객과 평단의 의견이 크게 갈렸습니다. 일부는 "조잡한 세계의 잔혹한 조감도"라며 작가의식을 높게 평가한 반면, 다른 이들은 "폭력의 전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된 반응은 오히려 아수라가 가진 문제작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7. 결론: 타협 없는 암흑의 초상화
아수라는 인간의 추악함과 권력의 부패를 타협 없이 그려낸 한국 느와르의 극점입니다. 화려한 배우 라인업과 압도적인 폭력성, 그리고 희망 없는 결말까지, 이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불편함을 안겨주면서도 현실의 민낯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2016년 개봉 당시 대중적인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기존 질서를 깨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황정민과 곽도원의 열연, 그리고 몇몇 잊을 수 없는 액션 시퀀스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합니다.
아수라는 결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지만, 그 과정은 분명 값진 여정이 될 것입니다.